주임원사 잘 만나서, 인생이 바뀐 사람
한 청년에게 부사관은 계급이 아니라 ‘가족’이었다
어떤 사람에게 군대는 잠시 지나가는 시간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군대는, 처음으로 자신을 사람답게 대해준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는 넉넉한 집에서 자라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집은 비어 있었고, 부모의 품은 오래 기억나지 않았다. 남들처럼 가족사진을 펼쳐놓고 웃을 추억도 많지 않았다. 보육원과 낯선 방,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던 시간들이 그의 어린 시절을 채웠다.
학교에서도 삶은 쉽지 않았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부모가 곁에 없다는 이유로, 그는 자주 놀림과 따돌림의 대상이 되었다. 그때마다 누군가 따뜻하게 안아주면, 그 품 하나만으로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적었기에, 그는 사랑을 주는 사람들을 더 선명하게 기억했다.

그런 그가 군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군대도 버티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시키는 대로 하고, 혼나지 않으면 다행인 곳. 하루하루만 넘기면 되는 곳.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한 사람을 만났다. 주임원사였다.
처음에는 그 주임원사가 불편했다. 자꾸 공부하라고 했다. 책을 사주고, 시간을 내라고 했다. 장기복무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석·박사 지원 프로그램도 알려주며 “너는 여기서 끝날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속으로 반발했다.
‘왜 나한테 자꾸 뭘 하라고 하지?’
‘내가 그렇게 못 미더운가?’
‘나는 그냥 조용히 군 생활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 말은 강요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방식이었다.
주임원사는 그를 부대 안의 한 병사나 하급자로만 보지 않았다. 밥을 먹이고, 책을 빌려주고, 가족들과 만나게 했다. 주임원사의 자녀들은 그를 형제처럼 대해주었다. 따뜻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사랑을 주는 법도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집에서 처음으로 ‘나도 누군가의 가족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구나’라는 감정을 배웠다.
훗날 그가 결혼을 결심했을 때도 주임원사는 곁에 있었다. 혼주석에 앉아주고, 손편지를 읽어주었다. “우리 막내아들 결혼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에 그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마음으로 맺어진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그날 알았다.

결혼 후 작은 전셋집을 얻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방에는 제대로 된 살림살이 하나 없었다. 컴퓨터 몇 대와 침대 하나가 전부였다. 그런데 어느 날 주임원사 가족들이 찾아왔다. 살림살이를 하나둘 채워주고, 웃으며 집들이를 했다. 텅 비어 있던 공간이 사람의 온기로 가득 찼다.
그는 뒤늦게 공부를 이어갔다. 야간대학을 다니고, 학위를 받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넓혀갔다. 부대에서 배운 성실함과 버티는 힘은 사회에서도 그를 지탱했다. 그는 더 이상 “가난해서 안 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누군가 믿어준 덕분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한 개인의 미담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군에서 주임원사와 부사관의 역할은 단순히 병력 관리나 행정 통제에만 있지 않다. 진짜 부사관의 힘은 사람을 알아보고, 사람을 세우고, 무너질 것 같은 후배에게 다시 일어설 이유를 만들어주는 데 있다.
어떤 후배에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
어떤 병사에게는 믿어주는 선배 한 사람이 평생의 버팀목이 된다.
어떤 청년에게는 군대에서 만난 주임원사가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
부사관은 계급으로만 존중받는 사람이 아니다.
부사관은 사람을 키워낸 결과로 기억되는 사람이다.
오늘도 어느 부대에는 말없이 후배의 앞길을 걱정하는 주임원사가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잔소리처럼 들려도, 속으로는 “저 아이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선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후배는 말할 것이다.
“나는 주임원사를 잘 만나서 인생이 바뀌었다.”
그 한마디야말로 부사관이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훈장이다.